
번역을 하다 보면 가장 곤란한 순간은 단어가 아닌 맥락에 부딪힐 때다. 예를 들어, 독일어의 어떤 표현은 문법적으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문화적 배경은 한국어로 옮길 때 곧장 사라지곤 한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책상 위에 연필을 내려놓고, 그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그것이 비록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더라도, 문장의 생명력은 바로 그 미묘함에서 살아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일상 대화 속에서조차 번역적 사고가 스며든다는 걸 자주 느낀다. 친구가 무심코 던진 농담이 영어로는 전혀 다른 뉘앙스로 들릴 수 있음을 설명하다 보면, 언어의 간극이 단순히 학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경험은 번역이 곧 문화 해석의 과정이라는 점을 더욱 분명히 해준다.
번역가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완벽한 등가를 찾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전이가 만들어내는 여백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겨난다고 본다. 그래서 원문을 해석할 때는 단순히 문법이나 어휘에 매달리기보다, 글이 놓여 있는 시대적 맥락과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한다. 이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독자가 읽을 때 ‘살아있는 언어’로 다가가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은 내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전 같으면 지나쳤을 작은 표지판이나 문구에서도 이제는 그 표현이 왜 그렇게 선택되었는지 곱씹게 된다. 단어는 쓰임의 결과물이자 동시에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번역은 언어를 옮기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다시 조망하는 훈련과도 닮아 있다.
앞으로도 나는 단어 하나에 담긴 무게를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 한다. 작은 차이를 놓치지 않는 습관이 쌓일수록 번역은 더 정직해지고, 독자는 원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언어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일, 그것이 내가 계속 글을 쓰는 이유이자 번역가로서의 가장 큰 사명이라 생각한다.
– 이정민 번역가

